서울국제여성영화제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홍콩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허안화 감독의 작품 활동을 돌아보는 회고전을 준비하였다. 허안화 감독은 70년대 중후반, TV 영화로 경력을 시작하여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31편의 영화를 통해 이주와 이산으로 건설된 유동적인 홍콩의 시간과 공간을 포착해 왔다. 홍콩 뉴웨이브의 도래를 알린 초기 사회파 영화들부터 공포 스릴러, 코메디, 무협, 액션, 로맨스 등 대중 장르 영화, 소박한 사실주의적 예술영화들까지 허안화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기존의 하나의 경향이나 주제, 양식으로 정의될 수 없으며 그 영화들에 담긴 홍콩의 모습 또한 변화무쌍하다. 홍콩의 도시 문화에 관한 최고의 관찰자 가운데 한 명인 학자 악바르 압바스(Ackbar ABBAS)는 홍콩은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잡아챘으나 이미 사라져버리고, 오직 손아귀에는 클리쉐만이 남아 있는 데자 디스파루(Déjà Disparu)의 도시국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홍콩을 본다면, 허안화 감독은 이 도시국가를 전 필모그래피를 걸쳐 가장 적절하게 담아 온 것이다. 홍콩은 태생 자체가 본질적이거나 균질한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 그 존재 자체로 난민의 도시이거나 난민의 자손들이 이룩한 도시이다. 그래서 홍콩의 국민이라는 내부는 난민, 추방자라고 이름 붙여 밀어낸 외부를 이미 안에 품고 있다. 허안화 감독의 초기 대표작 '베트남 삼부작 <사자산하 – 베트남에서 온 손님>, <호월적고사>, <투분노해>'에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시각이다. 베트남 난민은 하 나의 계기로 등장할 뿐 허안화 감독의 관심은 외부자인 난민에게 연민을 느끼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추도록 홍콩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허안화 감독은 그들을 통해 홍콩인 자신 내부에 들어있는 외부의 존재를 비춰 보기를 바란다. 

가장 주목해야 할 영화는 홍콩 뉴웨이브의 도래를 알렸던 그리고 베트남 삼부작의 시작이 되었던 허안화 감독의 초기 TV 영화 <사자산하 – 베트남에서 온 손님>, <사자산하 – 육 교>, <사자산하 – 길>, <소셜 워커 – 아시>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홍콩 뉴웨이브의 전사라고 영화, 책에서만 말해지던 홍콩공영방송과 TVB의 사회파 TV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기회로, 사회적 주제에 대해 특유의 직설적이면서도 거리두기로 구성되는 허안화 감독만의 스타일 원형과 홍콩 뉴웨이브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홍콩 필름 아카이브에서 최근에 디지털 복원한 <풍겁>,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을 비롯 2차 세계대전과 얽혀 있는 아시아의 역사를 모녀 사이의 관계를 통해 여성적 시각으로 보여주는 <객도추한>, 중국 반환 이후 홍콩-중국 접경 지역이자 신개발지역인 천수위를 배경으로 한 서민 드라마 <천수위의 낮과 밤>도 놓치지 말아야 할 추천작이다.   황미요조 /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