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트 그레이>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수많은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가고 다치고 실종되었던 역사적 사건이다. 전쟁영화라면 그 주인공은 남성이며, 후방이 주요 배경이라면 여성의 위치는 아들이나 남편 혹은 연인을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아내•연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샬롯트 그레이는 좀 특별하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재편되던 시기, 샬롯트는 공식적으로는 비시정부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전선에 특수 임무를 띠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독일군과 싸우는 처지이며, 사적으로는 실종된 비행사인 연인 피터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여성이 결국 전쟁터인 프랑스에서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국가나 연인일까?
 이 영화는 낯선 환경과 상황에 놓인 한 여성을 통해 다시 쓴 또 다른 전쟁 이야기이다. 전쟁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한 마을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 하나의 전쟁 안에 다양한 전선들, 그리고 샬롯트 그레이 대신에 도미니끄 질베르라는 다른 이름의 사용이 보여 주듯이 가짜 정체성과 가장이 일상처럼 요구되는 세계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전쟁이라는 상황, 어떤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도 어느 순간 잊어 버리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길을 간다. <엘리자베스>, <오스카와 루신다>의 케이트 브란쳇이 강하고 위엄 있으면서 따뜻한 샬롯트 그레이 역을 맡았다. (변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