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에 만들어진 <세상 밖으로>는 코리안 뉴웨이브와 로드무비 장르라는 두 가지 역사 속에서 읽어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밖으로>는 민족민중의 현실에 천착했던 코리안 뉴웨이브 정치학을 집이나 가족이 없는 떠돌이나 일탈자들이 주인공인 로드무비 장르에 녹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은 여성, 게이 남성, 노동자 계급 남성으로 재현된다. 그러면서 미군, 우루과이라운드, 남북군사경계선, 언론통제, 여성차별 등 당대의 현실이 그들의 여정 위에 펼쳐진다. 결국 주인공들은 길 위에 펼쳐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되며 갈등적인 현실 때문에 ‘세상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다. 한편 이 영화는 이전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와는 달리 로드무비 장르를 우회한 풍자와 아이러니를 동원한 사회 비판적 영화 미학을 보여줬다. 이제 무거운 현실에 짓눌리지 않은 가벼움의 수사가 한국영화에 등장한 것이다. 실명으로 등장한 심혜진은 이전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당당하고 쾌활하며 남성의 성적인 대상이 아닌 동지로서의 여성상을 제시하면서 이전의 말하지 못하는 민중이라는 피해자/희생자 여성상을 벗겨낸다. 이는 영화가 가벼움의 수사, 즉 풍자와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더욱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