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여성이 감독한 최초의 누아르 영화라고 불리워지는 <히치 하이커>는 아이다 루피노가 연출과 공동시나리오를 담당한 1953년 범죄드라마이다. \'한 남자와 총과 차에 얽힌 실화\'라는 오프닝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1950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히치하이커 연쇄살인범의 범죄실화를 기반으로, 누아르 스릴러라는 매우 남성적인 장르 속에서 전후 남성세계의 수동성과 폭력성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 여성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관객은 감독이 젠더화된 장르를 통해 시도한 대중적 실험을 엿볼 수 있다. 탁월한 미장센과 몽타주 기법을 통해 살인마의 위험과 폭력성을 누아르 스타일로 완벽하게 재현한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면 영화는 탁 트인 평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를 보여준다. 두 중년의 백인 남성이 잠시 가정과 일상의 속박을 벗어나 자동차 여행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회병리적 히치하이커가 동행하게 되면서 남성들의 즐거운 모험은 탈출구 없는 포로들의 공포스런 경험으로 전락하고 만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한 해변마을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영화의 장르적 스타일은 점차적으로 밀실공포적인 압박감과 심리적인 좌절감을 배가시킨다. 간간히 익스트림 롱 쇼트에 잡힌 사막과 고속도로, 멀리 보이는 차의 모습들이 열린 공간으로 제시될 뿐, 대부분의 내러티브는 비좁은 차의 내부와 어두워진 밤의 야영지, 고립된 사막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 멕시코의 작은 상점들에서 벌어진다. 루피노 감독은 살인마가 손에 쥔 총과 그의 감기지 않는 오른쪽 눈의 이미지를 통해서 전후 미국사회에서 폭력의 원칙과 감시의 시선에 노출된 평범한 남성들의 악몽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