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아다니며 양털 깎는 일을 하는 앨리스는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뒤,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마을을 찾는다. 실로 오랜만에 찾은 농장은 그간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 풀이 엉망으로 잔뜩 자란 채 여기 저기 녹슬어있고 게다가 들쥐떼마저 들끓는다. 황폐해진 농장 한가운데서 앨리스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오빠 조를 만난다. 그들의 재회도 그녀가 도망치듯 이곳을 떠난 뒤로 15년만이다. 고향에 돌아온 앨리스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과거의 소리와 기억들이 그녀의 현재를 침범하고 흔들어댄다. 앨리스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이제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그녀는 농장을 보란 듯이 보수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치 그게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도 되듯 말이다. 

요크셔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시골의 자연 환경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노동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를 감싸는 어두움의 근원인 앨리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바탕에 둔 채 전개된다. 앨리스가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조는 농장 보수 문제를 두고 앨리스와 격하게 대립한다. 농장을 바꾸려는 앨리스와 개발업자에게 농장을 팔려는 조의 대립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국 요크셔가 배경인 목가적 전원극을 기대했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억눌린 분노와 고통의 에너지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