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일해 온 캐나다 감독 소피 자비스의 장편 데뷔작 〈가지가 휘어질 때까지〉는 한 여성의 고립과 해방을 그린다. 그 배경은 가정, 직장, 지역사회를 넘나든다. 이야기는 공장에서 복숭아 선별 작업을 하는 주인공 로빈에게 원치 않은 임신과 일터에서의 해충 발견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안기며 시작한다. 로빈은 양쪽의 해결을 시도할 때마다 소통에 실패한다. 매일 소외를 경험하는 그가 혼자가 된 자신을 잊는 방법은 벌레 찾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집착에 가까워지는 인물의 심경을 따라붙는 동안 음악은 목관악기와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주도한다. 16mm 필름의 서정적인 질감이 도리어 포크 호러의 정취를 북돋우기도 한다. 덕분에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재앙을 맞이하는 로빈의 몸짓은 이상한 설득력을 갖춘다. 그 찰나는 영화 속 세계를 비롯해 영화 밖 객석에서도 로빈의 ‘미친 여자’ 낙인을 지우게 만든다. 무엇보다 여동생 레이니, 상사의 아내 이자벨과 같은 여성 캐릭터들이 로빈과 접촉하는 순간이 흥미롭다. 그 연결은 후반부에 이르러 서사의 숨통을 트이는 한편, 이 작품을 생태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마주하고 싶은 욕구를 부추긴다. [남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