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 자욱한 모래바람, 미지의 적, 기약 없는 기다림. 〈루카〉를 구성하는 건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뿐이다. 화면에 다 담기지 않는 끝없는 사막의 풍경 속에 젊은 저격수 루카와 고립된 요새 카이로스의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놓인다. 언젠가 북쪽의 적이 쳐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곳 카이로스는 엄격한 규율로 군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위반은 곧 죽음이다. 청소와 정비 업무를 맡았던 루카는 어느덧 실력을 인정받아 꿈에 그리던 최정예 저격수가 되고, 어색하던 동료들과의 관계도 점차 진전되어 간다. 얼핏 새내기 군인의 성장기처럼 보이겠지만,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가 겨냥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을 상정하는 전쟁 자체의 거대한 부조리다. 외부에 대한 광적인 경계는 개개인의 인간성을 지워버리고 만다. 충성스러운 군인들은 그들이 무엇과 맞서 싸우는지도 끝내 알지 못한 채 바스러져 사막의 일부가 된다. 이 황량한 땅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건 놀랍게도 우정과 유대에 기반한 구체적인 몸짓이다. 친밀하며 관능적이기까지 한 육체의 상호작용은 경직된 언어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손시내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