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흩어짐으로 시작한다. 고 3 입시를 앞둔 멤버들에게 삼행시 클럽 활동은 사치다. 비장한 마지막을 위해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삼행시를 한 수 읊는 민영과 그것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정희와 수산나의 모습을 보면, 삼행시도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시'가 된다. 이들은 또 한 번 물리적으로 흩어진다. 민영은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수산나는 미국 명문대로 진학하고, 정희만이 그 자리에 남는다. 정희는 아직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좋을지 알 수 없다. 막막하긴 해도 조급하진 않다. 테니스장에서 동그란 공을 줍고, 전단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시간표로 그 다음을 생각한다.

함께였던 우리는 어떻게 흩어지고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가. 아니, 재결속이 가능하긴 한가. <성적표의 김민영>의 화법은 언뜻 느슨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관계의 폐부를 서늘하게 찌른다. 정희의 삶을 다소 한심하게 여기는 현실적인 민영을 내세워 두 인물을 대치시키다가도, 인물 각자의 속내를 보여주는 데 인색하지 않으며, 결말로 이르는 방식 또한 도전적이다. 이 영화가 남긴 화해는 역시 소박한 듯 보이나 에두르는 식의 악수나 어깨동무 정도가 아니라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향해 육박하는 세찬 포옹에 가깝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세대의 방식이 아닐까. 정희의 용기는 두고두고 기억할 만하다. [김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