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형사물 장르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와 조사 대상자 간에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호모소셜한 우정 서사를 여성의 서사로 치환한다. 여성 형사의 여성 피해자에 대한 공감 서사는 넷플릭스 화제작 「믿을 수 없는 이야기」(2019)에도 발견된다. 나아가 <내가 죽던 날>은 그들이 상호소통되는 특별한 유대감을 가미한다. 주인공 형사 현수는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소녀 세진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현수는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모함에 빠져 징계위원회에 소환될 예정에 놓여있는데, 세진 또한 아버지와 오빠의 무책임과 연정을 품었던 형사의 비겁함으로 인해 철저히 소외당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진의 곁에 있었던 순천댁을 마주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스터리로 빠지게 된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순천댁이 과연 소녀를 위험에 빠지게 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들며 장르적 재미를 가한다. 이어 드러나는 전말에는 혈육이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취약한 여성들 간의 유대감이라는 반전이 있다. 순천댁은 평생 아픈 조카를 돌보는 말 못하는 여성이며, 세진은 남성이 저지른 죄의 희생양이 되어 시골에 고립되어 있고, 현수는 취약한 이들이 당하는 범죄를 밝혀내야 하는 형사지만 자신의 삶이 위기에 처해있다. ‘취약한 여성들의 연대’라는 이 여성 서사는 2021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받은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안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