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 작가의 회고가 잊히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받던 중 급하게 다른 반 교사가 찾아와 반 친구 하나를 귀가시켰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고, 친구는 그날 이후로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그 후 친구의 삶이 궁금하다고 했다. 영화는 마치 교실을 떠났던 친구의 이후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업 실패를 비관한 아빠가 자살한 뒤 선유 모녀는 낯선 곳으로 이사한다. 선유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동시에 엄마마저 자신을 떠날까 봐 항상 불안하다. 선유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빚 때문에 겪는 경제적 궁핍이 아니라 그로 인해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이모처럼 따랐던 엄마의 친구는 어느새 채무자 혹은 채권자일 뿐이고, 아빠의 부재를 배려하는 친구들의 마음은 동정으로 오해되곤 한다. 영화는 선유의 불안과 고통, 혼란스러움을 상세히 보여 주지만, 그것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은 알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편견 없이, 소란스럽지 않게 손을 내미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조언한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는 정국의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하고 작은 마음이 잠식하던 선유의 삶을 구원했던 유일한 위로였던 것처럼 말이다. [정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