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 당한 69세 효정은 고소를 결심하며, 성폭력 피해자와 가난한 노인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역경을 겪는다. 조무사의 나이를 들은 경찰은 “친절이 과했네”라며 농을 치고, 피해 사실을 들은 수간호사는 “조심 좀 하시지”라는 말로 효정을 2차 가해한다. 그 과정에서 효정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러므로 치매에 걸리기 쉬운, 나이답지 않게 몸매가 좋고 옷을 잘 입는 여성, 그렇기에 29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한 여성으로 거듭 재정의된다.

주목할 것은 효정의 역경과 그가 머무르는 물리적 공간의 섬세한 문학적 동기화다. 시인 동인의 일을 도우며 그의 집에 얹혀사는 효정은 경제력이 없고 자식과도 연락이 끊기다시피 한 처지다. 마트에서 마주친 동네 사람들이 동인에게는 인사를 건네면서 효정을 무심하게 대하는 장면은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노인의 자리를 선명하게 비춘다. 사건 이후 동인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진 효정은 전에 숙식하던 간병인의 집으로 도망치듯 몸을 의탁하지만, 이곳은 과거 성폭력 피해의 또 다른 현장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의 역경과 맥을 같이한다. 효정이 머무는 공간들이 하나같이 어둠 속에 잠겨있는 것, 가해자를 압박하러 가는 한낮의 길 위에서 그의 얼굴이 돌연 단단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암전 속의 목소리로 미미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던 주인공이 햇빛 찬란한 옥상에서 스스로 존엄을 선포하기까지의 여정이 로드무비처럼 내내 황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