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돌려 절벽으로 뒷걸음질치고 전조등을 끈 채 어둠 속을 질주하자, 스무 살 리아가 열여덟의 줄리오에게 제안한다. 미성년의 경계에서 만난 둘의 로맨스는 달뜬 흥분과 미숙한 충동, 쉽사리 고백하기 어려운 비밀들로 점철돼 있다. 매혹적인 이탈리아영화의 계보를 연상시키며 퇴폐와 탐미를 오가는 전원의 러브 스토리처럼 보이는 <더 덴>은 사실 그보다 냉정한 고통의 은신처에서 걸어 나온 영화다. 순진한 시골 소년 줄리오를 사로잡은 옆집 여자 리아는 섹스와 죽음, 쾌락과 파탄의 충동을 일깨워 주는 팜므 파탈처럼 묘사되지만, 줄리오가 리아의 집 안을 엿보는 순간 그 전형은 이내 우그러진다. <더 덴>이 비로소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한 여자의 사정을 서술하는 중반부부터다. 영화는 굴처럼 은밀한 집을 배경으로 투병 중인 엄마를 돌보는 딸의 우울과 억압된 심리를 섬세한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에 포착해 낸다.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인물 간 관계를 점화해, 남성에서 여성으로 시선의 주체를 역전시킨 뒤, 나아가 불온한 연대를 조직하는 작가의 집요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여성의 발화되지 않은 고통으로부터 고립과 소외의 궤적을 찾아내고, 아픈 여자들이 처한 연약한 생존의 조건에 대해서도 넌지시 질문하는 작품. [김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