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오스트리아 그라츠, 록다운에 의해 집에 갇힌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 <제트래그>가 서술할 시차증의 주체로 등장한다. 고향인 중국 항저우에 가기 위한 그들의 고단한 여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정루신위안 감독은 그 여정 위로 1940년대에 증발해 버린 증조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떠났던 수년 전의 미얀마 여행을 중첩시킨다. 폐쇄의 흔적만이 가득한 오늘의 세계, 그리고 오래된 여행의 기억을 이중 인화처럼 겹쳐 낸 이 비디오 에세이를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긴 어렵다. 카메라는 텅 빈 공항과 테이프로 봉쇄된 호텔 방, 보호복을 입은 의료 종사자들의 모습을 근접 촬영 해 팬데믹의 정서를 옮길 뿐 아니라, 주변의 가장 사소한 피사체들을 경유해 미얀마행에서 암시되는 내전의 비극까지도 논의한다. 아버지들의 폭력과 부재를 자기 서사로 재정의하는 여성들의 움직임 역시 이 가운데 포함될 하나의 분명한 실루엣이다. 오프닝의 고백처럼 이것은 “모두들 누가 주연인지 알지만 그는 결코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는” 이야기이며, 정루신위안 감독은 혼란과 신중함 사이에서 부유하면서도 카메라 렌즈를 통한 자기탐구에의 믿음만큼은 잃지 않는다. 무기력, 피로, 고독과 같은 마음의 시차를 그리는 <제트래그>의 숏들에서 외려 순수함과 친밀함, 따뜻한 솔직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김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