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리옹은 산업 혁명 이후 견직 산업이 발달하며 주요 공업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7월 혁명 직후인 1831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살인적인 노동 조건에 시달리던 리옹 방직 노동자들이 봉기하자, 루이필리프 왕정은 3,000명이 넘는 진압군을 파견해 견직공들을 체포하고 학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을 이어갔다.
1978년 여름. 역사학을 전공한 독일어권 여성 엘리자베트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노동·여성 운동을 아울렀던 사회주의자 플로라 트리스탕(1803~1844)이 생의 마지막 해에 머물렀던 리옹으로 떠난다. 트리스탕의 활동을 재현하는 문헌 자료를 주로 다루는 기존 역사 연구 방법론의 ‘맹점(Blind Spot,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을 절감하는 엘리자베트는, 트리스탕이 온몸으로 감각한 바를 추체험하고 이어지는 정동을 행동으로 전환하길 갈망한다. 그리하여 리옹에서 새의 노래와 아이들의 환성, 강물과 기계, 그릇 소음, 발자국 소리까지 채집하는 엘리자베트는, 트리스탕의 당대를 반향실 속 메아리처럼 다시 들으려 한다. 이 와중에 두고 온 딸 등 사적인 기억과 더불어 교황은 죽었으나 피노체트는 건재한 현실이 간섭해 오며, 그는 역사 유적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이 삶을 일군 터전인 리옹을 필연으로 만난다.
리옹은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옥하다 A Man Escaped>(1956) 등 여러 영화에 등장하듯,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의 주 활동 무대였다. 이곳에서 ‘쇼아’의 기억을 마주하는 엘리자베트는, <리옹으로의 여행>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샹탈 아케르만의 <안나의 랑데부 Meeting with Anna>(1978)에서 나치 절멸 수용소 생존자인 모친의 기억을 쫓아 길을 떠나는 안나의 자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신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