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이국의 땅”에서 태어난 박수남 감독은 “도둑맞은 자신과 빼앗긴 말을 되찾아” 가는 “여정”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바,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그 방향이 재일 조선인, 징용과 원폭 피해자를 거쳐 오키나와전 및 ‘위안부’ 생존자를 향하는 계기가 된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몇 번이고 되풀이되듯, 그들이 살아 낸 경로는 “말로 다 못 하는” 것이기에 카메라는 왕왕 목소리를 뒤로한 채 침묵하는 이들의 복잡미묘한 표정과 몸짓에 집중한다. 그렇게 이른바 “한의 길”이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데, 다소 상투적인 이름과 달리 이 길에서 차츰 마주하는 것들은 역사가 때때로 해방의 수사를 빌려 단순화하고 심지어 기각해 버렸던 경험과 기억이다. 국적으로 분리되었던 이들 사이에 지역과 젠더, 경제가 얽혀 들면서, 생략하거나 감추어 왔던 입장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잊었던 선의가 상기되며 공감과 애도의 순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감독이 “이국의 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을 터, 다양한 타자들을 향해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여정을 이어 가겠노라 천명하며 감독은 영화를 끝맺는다. 그로부터 30년, 여든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도 박수남 감독의 여정은 진행 중이다. [이유미]